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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대륙의 미학 역설의 시학 서적출판


“원천기술·물류거점 등 러시아 잠재적 가치 제대로 봤으면”
 
“이 책이 지난달 28일 맞은 한국과 러시아 수교 30년을 기념하는 첫 구체적인 결실 같아요. 코로나로 애초 예정한 180개 기념행사가 하나도 성사되지 못할 것 같아 지난 2월에 한국의 러시아 전문가들의 생각을 정리한 책이라도 내자고 출판을 계획했죠.”
지난달 28일 나온 책 <대륙의 미학 역설의 시학>(삼인)을 기획한 김현택 한국외대 노어과 교수의 말이다. 여기엔 러시아 문화와 경제, 과학기술 등 분야에서 이력을 쌓은 한국인 필자 27명이 ‘나와 러시아’를 주제로 쓴 글이 담겼다.
‘러시아를 공부하는 사람은 중간은 없다. 사랑하거나 증오 둘 중의 하나’라는 공저자 구자정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의 말처럼 책에는 러시아 연정의 내밀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겼다.
 
77년 고려대 문과대 어문계열로 입학한 석영중 고려대 노문학과 교수는 신입생 때 우연히 들은 교양 러시아어 수업으로 삶이 바뀌었다. 그는 “영어 알파벳을 뒤집어놓은 듯한 러시아어의 절묘한 실루엣에 완전히 매혹당했다”고 했다. 연세대 사학과를 다니던 구자정 교수는 운 좋게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교환학생으로 뽑히면서 삶의 전기를 맞았다. 제정 러시아 건축 박물관이자 872일 레닌그라드 포위전의 비극적인 역사가 생생한 이 도시에 푹 빠지면서 이 나라 역사 연구자의 길을 걷게 되었단다.
책에선 수교 때만 해도 장밋빛 미래를 점쳤던 두 나라 관계가 30년에도 별다른 진전이 없는 현실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만날 수 있다. 필자들의 상당수는 옛 소련의 체제 전환기인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중반 사이에 대학 전공으로 러시아를 만난 이들이다. ‘지난해 한-러 교역은 223억 달러로 베트남(692억 달러)보다 작다. 재작년 인적 교류도 67만 명으로 중국(972만명)에 비해 너무 미약하다.’(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한국은 전체 해외투자액의 1%만을 러시아에 썼다. 러시아가 한국에 투자한 사례는 거의 없다.’(박종호 한러 비즈니스 협회 대표)
 
지난 9일 전화로 만난 김현택 교수는 내년 2월이 정년이라고 했다. “퇴임하고는 강사로 사는 러시아 전공자들을 위해 학술·출판 공동체를 꾸리려고요.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후반 사이에 우수한 학생들이 노어과 대학원에 많이 들어왔어요. 이들이 공부를 마치고 직장 잡기가 너무 어려워요. 그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작지만 협업할 수 있는 길을 생각하고 있어요.”
 
이런 현실은 지난 30년 한-러 관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90년대에는 한국이 러시아와 뭔가를 하려고 했으나 러시아가 정상이 아니었고 그 뒤에는 러시아가 접근했으나 우리가 옛 러시아 생각만 하고 호응하지 않았죠.” 설명이 이어졌다. “한-러 수교가 한-중보다 1년 빨랐어요. 그때 러시아 열풍이 불어 많은 사람이 러시아 출장을 갔고, 러시아어를 하면 엄청난 미래가 보장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 시절 러시아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로의 전환기여서 무질서와 혼란 상태였죠. 지도자들은 돈을 해외로 빼돌리고 마피아가 창궐했고요. 이 모습을 본 한국인들은 러시아를 형편없는 나라라고 생각했죠. 이 상태가 7~8년 지속했어요. 그러다 2000년부터 10년은 국제유가가 좋아 러시아 경제가 살아났어요. 외관상 정상국가가 됐죠. 2015년에는 러시아가 블라디보스토크 동방경제포럼을 띄우고 여러 신호를 보내며 한국에 접근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잘 안 되었어요. 큰 이유는 미-러 관계가 좋지 않아서죠. 현 정부도 임기 초 신북방 선언을 하며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의욕을 보였으나 미-러 관계가 최악인 데다 코로나 19로 동력을 잃었어요.”
 
어떻게 해야 하나? “러시아는 미국과 중국에 쏠리지 않고 부분적으로 조커처럼 쓸 수 있는 카드입니다. 우리가 그걸 못 해요. 우리의 한계이죠. 러시아도 동북아에서 중국과 일본은 부담스럽지만 한국은 유용하고 흥미로운 카드라고 생각해요. 한국과 갈등 요인도 없고요. 러시아를 남-북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을 받는 대상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양자 관계의 틀에서 관계 정립을 해야 합니다. 러시아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은 물론 물류 거점과 원천 기술 확보라는 점에서도 중요해요. 양자 관계로 접근하지 않으면 미-러 관계가 좋지 않을 때는 러시아에서 발을 빼는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어요.” 이런 말도 했다. “대러시아 사업이라는 게 선명하고 구체적이지 않아요. 단기적으로 진행되지도 않고요. 그런데 우리 정부와 기업은 단기 성과를 기대했죠. 지금껏 두 나라 사이에 가스나 철도와 같은 메가 프로젝트가 진행된 게 하나도 없어요. 최근 들어 가스나 철도는 건너뛰고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협력하려는 움직임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어요.”
 
그는 “두 나라 사람들 사이의 정서적·문화적 접점이 크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과 러시아인들이 1860년대부터 만나 섞이기 시작해 150년 이상 흘렀어요. 그 사이 두 나라 사람들 사이에 깊은 우정이 쌓였어요. 우리는 톨스토이나 차이콥스키 같은 러시아 문학이나 고전음악을 가장 좋아하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러시아인들은 동방의 작은 나라가 자신들의 문화를 그렇게 좋아한다는 것을 놀랍게 생각해요. 지금 러시아 젊은이들은 한국의 케이팝, 드라마에 심각할 정도로 빠져 있어요. 한국에 대한 그들의 문화적 선호도는 영국 수준입니다. 중국이나 일본보다 더 앞서죠. 반면 한국 젊은이들은 상대적으로 러시아에 무관심하죠. 불균형입니다. 고민스러운 점이죠. 여기에는 러시아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도 영향을 미친다고 봐요. 러시아는 한국에서 희생양이죠.”
 
유신 시절인 1974년 한국외대 노어과에 들어가 미국 캔자스주립대에서 러시아 문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2003년에 한국계 러시아 작가 아나톨리 김과 함께 <춘향전>을 러시아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러시아인들은 그가 번역한 <춘향전>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반응이 없었어요. 그때는 영화 외에는 한국 문화나 예술에 관심이 없을 때였죠. 지금은 달라요. 영화나 케이팝, 드라마로 한국이 알려지면서 한국 문학에도 관심을 보입니다. 김영하 같은 현대 작가의 책을 찾아요. 러시아어 번역도 지금은 한국인 대신 한국문학번역원에서 키운 러시아인 번역자 40명이 주로 하고 있어요.”
 
지금껏 러시아를 40회 이상 찾았다는 김 교수에게 러시아의 가장 큰 매력을 물었다. “사람들이 얘기해보면 투박하고 무뚝뚝하지만 삶의 결이 순수하고 가식이 없어요. 우리는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잖아요. 그 사람들은 개성을 그대로 표출해요. 우린 서로 닮았고 묶여 있지만, 러시아에는 진짜 개인들이 많이 있어요. 외로운 사자들이죠. 새로운 발상의 독특한 기술체계나 거버넌스가 러시아에서 많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인 것 같아요. 수학 물리학 원천기술도 많고 컴퓨터 프로그래밍도 세계 최고 수준이죠. 군사 기술도 중국에 뒤지지 않아요. 창조적인 원천기술이나 이걸 교육하는 시스템은 절대 세계 최고에 뒤지지 않아요.”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66230.html#csidxa3adb4b9620a9878b1eec137ac02f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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