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은 왜 ‘한번 더’를 외치는가 푸틴의 소프트 파워 전략
앞으로 23일. 러시아 대선을 앞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그는 오늘도 남한 면적의 170배나 되는 거대한 땅 러시아(1700만㎢)를 차로, 비행기로 분주하게 누비고 있다. 러시아 방송들은 거의 매일 밤 푸틴의 일거수일투족을 방영한다. 티브이 화면 속 푸틴은 러시아 시민들과 담소를 나누고, 공무원들에게 직접 지시를 내리고 있다. ‘나라님’의 말씀 마디마디엔 뼈가 있다.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정교하게 계산된 포석이 놓여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재래시장에서 뻥튀기·떡볶이·어묵을 사 먹으며 ‘친서민’ 정책을 예고했고, 군용 점퍼를 걸치고 벙커로 들어가면서 연평도를 포격한 북한에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엄포를 놓지 않았는가. 하물며 푸틴이다. 그는 현존하는 전세계 지도자 중 ‘둘째라면 서럽다’고 할 ‘이미지 정치’의 달인이다. 공산주의 이상을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카메라의 각도 하나까지 직접 주문했다는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 이후 최고라는 평가도 있다. 과장을 좀 보태면, 푸틴의 이미지가 곧 러시아였다. 새 천년을 하루 앞둔 1999년 12월31일,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의 전격 사임으로 혜성처럼 러시아 정계 중심에 등장한 그는 비상하는 강한 러시아의 상징 그 자체였다. 유도로 단련된 건강한 몸, 굳게 입을 다물고 쏘아보는 파란 눈의 푸틴은 술 취한 채 맥락 없는 말을 늘어놓던 노쇠한 옐친과는 대척점에 있었다. 옐친이 소련 붕괴 이후 휘청거리는 러시아였다면, 푸틴은 폐허를 뚫고 나오는 젊은 러시아 그 자체였다. 전투기 몰고 호랑이 잡던 손 국제유가 등의 상승에 힘입어 연 7%씩 쭉쭉 성장하던 푸틴 재임기(2000~2008년)의 러시아는 ‘전투기 모는 푸틴’ ‘근육질의 푸틴’ ‘호랑이 잡는 푸틴’ ‘기업가에게 호통치는 푸틴’ ‘바이크를 모는 푸틴’의 이미지로 다양하게 변주됐다. 러시아 유권자들은 70~80%에 이르는 지지율로 그에게 환호를 보냈다. 또 푸틴은 2010년 12월엔 샤론 스톤 등 유명 배우들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푸틴’으로 변모했다. 그가 부른 건 애국적 정서를 담은 소련 시절의 노래 ‘조국은 어디에서 시작하는가’. 전세계가 경제 위기로 요동치는 시기였다. 강하기만 한 줄 알았던 이 남자는 부드러운 감성으로 옛소련의 ‘향수’를 자극했다. 이듬해 겨울엔 ‘스웨터 차림’으로 크리스마스 예배에 참석한 푸틴을 볼 수 있었다. 늘 편안한 재킷이나 점퍼 차림이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이 스웨터는 2010년 여름 러시아 남부를 휩쓴 대형화재 진화를 직접 지휘해준 데 대한 감사 표시로 니즈니노브고로드주의 이재민들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국민의 사랑을 받는 지도자 푸틴’의 탄생이다.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연구소의 라승도 박사는 “3선 출마를 앞두고 푸틴은 기존의 딱딱하고 강인한 인상뿐 아니라 부드러운 감성적 측면을 강조하는 소프트 파워 전략을 구사해왔다”고 분석했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