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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김정일 사라진 北과 한.러外交의 과제-문화일보(2011.12.29)

김정일 사라진 北과 한·러 外交의 과제



강덕수/한국외국어대 서양어대 교수·러시아어

세계 정치지형(地形)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린다. 한반도에서는 북한의 독재자 김정일이 사망했고, 시베리아 너머 러시아에서는 차기 대통령후보 문제로 정치가 요동치고 있다. 차기 대통령후보로 블라디미르 푸틴이 결정된 데 대해 피로감이 노출되고, 총선과 관련된 부정선거 항의시위가 계속됐다. 하지만 정치공학적 예측과 달리 시위는 가라앉는 분위기다.

선거 전에는 현 푸틴 총리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 간의 갈등설, 제3의 인물설도 나돌았다. 이런 주장이나 추측은 어긋났다. 메드베데프의 뒤를 이어 푸틴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그것이 쉬워 보이지 않는 것은 푸틴의 통합러시아당이 총선에서 과반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과거의 러시아가 아니다. 언론을 통해 오히려 문제를 부각시키고, 시위를 용인(容認)하는 유연한 자세, 이같은 노련한 정책은 러시아가 분명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내적 정치의 유연성과 달리 푸틴은 ‘강한 러시아’를 표방하고 있다. 그것은 국방개혁·교육개혁·극동개발 등 많은 정책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국방개혁으로 사단 중심 편제를 여단 중심으로 바꾸는 등 정예화를 지향(指向)하고 있다. 또 교육개혁의 일환으로 지정된 7개 연방 대학은 머지않아 글로벌 수준의 대학이 될 것이다. 그리고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정부 개입을 축소해 투자 환경을 개선하고 경제 체질을 강화할 것이다.

이러한 결과 ‘유연하면서도 강한 러시아’의 부상은 동북아시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러시아는 극동과 시베리아 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향후 상당 기간 러시아는 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이러한 러시아에 최상의 파트너는 바로 대한민국이다. 산업구조 면에서 두 나라는 매우 이상적으로 상호 보완적이다. 6년 이상 한국에서 지낸 러시아 대기업 대표는 동북아시아에서 러시아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한국을 꼽았다. 한국 기업과의 거래에서 협상 과정은 까다롭지만 일단 성사되면 끝까지 신의(信義)를 지킨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근처에 준공된 현대·기아자동차 공장을 예로 들었다. 새해 3월11일까지 계속되는 잠실 종합운동장 특설 전시장의 ‘맘모스 전시회’도 그 중 하나다. 러시아 사하공화국의 요청으로 시작됐지만 한국 파트너는 많은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신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결국 성사시켰다. 한국에 대한 러시아의 신뢰는 결코 거저 쌓아진 게 아니다.

푸틴의 ‘강한 러시아’는 한반도 평화 정착에 결코 부정적이지 않다. 중국은 아직도 북한과의 군사동맹을 유지하고 있는 반면, 러시아는 한반도의 통일에 대해 지지를 표명했다. 최근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국내 주요 일간지 기고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과의 긴밀한 협력을 강조했다. 이러한 기조는 ‘푸틴의 러시아’에서 더욱 강화될 것이다. WTO 체제의 러시아는 안정된 금융 시스템과 경제 체질을 바탕으로 극동과 시베리아 개발을 위해 동북아시아에서 한국과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러시아에 대한 시각 전환이다. 러시아에 대한 두려움이나 부정적인 시각을 버려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력은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 만큼 작지않다. 19세기 시인 표도르 이바노비치 튜체프도 러시아를 이해(理解)하지 말고 그냥 믿으라고 했다. 무엇보다 러시아엔 한국을 협력의 파트너로 보려는 진정성이 있다. ‘강한 러시아’를 지향하는 푸틴의 러시아가 한반도 통일과 동북아시아 정세 안정에 긍정적 요인이 될지는 우리의 자신감과 지혜에 달렸다. 김정일이 없는 한반도에서 푸틴의 러시아는 중요한 균형자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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