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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진단] `동상이몽` 북·러 정상회담이 남긴 것 - 매일경제(2011.08.28)


[테마진단] `동상이몽` 북·러 정상회담이 남긴 것  - 매일경제(2011.08.28)




(홍완석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장)

지난 20일 은둔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외국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4박5일간 러시아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24일에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동부 시베리아 울란우데시 외곽에서 정상회담을 한 후 귀국길에 올랐다. 그렇다면 이번 북ㆍ러 정상회담 성과와 의미는 무엇인가?

2시간10분에 걸쳐 진행된 울란우데 정상회담의 핵심 키워드는 `6자회담`과 `가스관`으로 요약된다. 여기서 관전 포인트는 치밀한 이해득실 계산하에 핵심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덜 중요한 이익을 양보하는 `이익 교환`이다.

그러나 그 교환은 동상이몽적 접근에 기초한다. 북한이 교착 국면인 6자회담을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과 형식으로 재개하기 위한 정치협력에 비중을 두었다면, 러시아는 낙후된 시베리아 극동지역 개발을 위한 가스관 연결이라는 경제협력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모스크바는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라는 평양 측 주장에 동의해준 대신 `가스관 부설을 위한 남ㆍ북ㆍ러 3국 간 특별위원회 발족` 요구를 관철한 것이다. 이는 상호 상대방에 대한 이익적 접근의 시각차를 반영하고, 그래서 북ㆍ러 양국 간 협력은 쉽게 접착될 수 없는 취약성을 드러낸다. 북ㆍ러 정상회담이 무려 9년 만에 성사됐지만 `속빈 강정`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익 맞교환을 시도했던 2001년 김정일-푸틴 간 모스크바 정상회담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러시아는 북한 측 주한미군 철수 주장에 `이해`를 표명한 대신 크렘린은 숙원 프로젝트인 `북한과 러시아 철도 연결사업 본격 실현` 약속을 얻어냈다.

하지만 이 합의사항은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서 제기되는 의문은 러시아가 북한~한국을 잇는 3대 삼각경협, 즉 철도 연결, 가스관 부설, 전력망 연계사업에 왜 강한 집착을 보이는가 하는 점이다.

그 이유는 이 사업이 지닌 전략적 성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에너지, 철도, 전력은 경제적 이익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공급국에 대한 종속성과 의존성을 심화시키는 전략적 의미를 갖기 때문에 모스크바가 주도하는 남ㆍ북ㆍ러 삼각경협은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지경학적ㆍ지정학적 영향력을 자연스럽게 증대시켜줄 수 있다.

문제는 한반도를 긴장으로 내모는 북한 측 모험주의가 이 삼각경협 실현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하고, 연평도 군사 도발을 태연하게 자행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전략적 안정을 훼손하는 평양 측 행태가 밉지만, 러시아로서는 북한을 달래고 포용하는 것 외에는 별 도리가 없다. 북한과 관계 경색 내지 단절은 러시아연방 출범 초기처럼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상실은 물론이고 대규모 지경학적 프로젝트인 삼각경협을 수포로 돌아가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에 적극 동참하지 못하고, 대북 식량ㆍ중유 지원을 선도적으로 제공하고, 김정일 방러에 대해 이례적으로 환대하고, 북한의 조건 없는 6자회담 재개 주장을 수용한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울란우데 정상회담이 북ㆍ러 양국의 상이한 이해관계 수렴 노력의 일환으로 성사되었지만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 수준에서 볼 때 북한을 개혁ㆍ개방으로 유도하고 남북한 화해 분위기 조성을 촉진했다는 점에서, 북한의 외교적 고립과 경제난 해소에 일정 수준 기여했다는 점에서, 중국의 과도한 대북 영향력을 완화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제 러시아를 과거 냉전기처럼 북ㆍ중ㆍ러 북방 삼각협력체제에서 중요한 고리로 여기는 사고의 타력을 버려야 할 때다.

[홍완석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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