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세계 지도를 펼치면 유라시아를 독차지하다시피 하는 나라 러시아. 북유럽과 중유럽,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를 지나 캅카스, 중앙아시아, 몽골, 중국 등 수많은 나라와 국경이 맞닿아 있고, 우리가 사는 한반도와도 두만강을 경계로 눈앞에 마주한다. 한반도 면적의 약 80배나 되는 거대한 땅덩어리다.
이처럼 지리적으로 한반도와 가까운데도 근래까지 우리에게 낯설게만 느껴졌다. 해방 후 분단 상황과 냉전 체제에서 소련과 교류가 완전히 차단됐을 뿐 아니라, 러시아어를 배우거나 이 나라에 관심을 보이는 일조차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가 오래도록 이어졌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동서 진영의 냉전이 완화하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부터 크게 달라졌다. 정부가 추진한 북방정책을 계기로 소련 등 공산권 국가들과 교류의 문이 비로소 열리기 시작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1990년 한ㆍ소 수교에 힘입어 이른바 '소련 붐'이 일었다. 러시아어는 인기 외국어로 떠올랐고, 모스크바로 연수와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 또한 줄을 이었다.
올해로 한국과 러시아가 국교를 맺은 지 만 30주년을 맞았다. 1990년 9월 30일 수교한 양국은 20세기 중후반 40여 년 동안 적대했던 관계를 청산하고 '가깝고도 먼 나라'에서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로 친밀해졌다. 이처럼 관계의 가파른 변전을 겪어온 두 나라 사이에서 지난 30년간 어떤 일들이 이뤄졌을까?
신간 '대륙의 미학 역설의 시학'은 러시아와 남다른 인연을 간직해온 한국 사회의 각 분야 전문가 27명이 자신의 러시아 체험을 써 내려가며 30년 동안의 두 나라 관계를 속 깊이 그리고 찬찬히 되돌아보게 한다.
저자는 문학ㆍ예술 전공자에서부터 통역가, 기업인, 물류ㆍ통상 전문가, 고고학자, 북한 연구자, 언어학자, 과학기술인, 언론인에 이르기까지 직업과 관심 분야가 다양하다. 세대적으로도 수교 훨씬 이전에 러시아를 연구한 이들부터 수교에 힘입은 첫 러시아 유학생 출신, 2000년대 들어 처음 러시아 땅을 밟은 이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필자들이 섞여 있다.
책은 각계에 종사하는 여러 세대의 이들 한국인이 저마다의 시각으로 흥미롭게 작성한 러시아 기행문이다. 필자들은 서로 다른 삶의 고비에서 러시아라는 나라를 만난 사연을 비롯해 그곳의 자연과 풍광, 살림살이, 사람들에 대한 인상과 감회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제1부 '문학과 예술의 광야 너머'는 러시아가 세계에 자랑해온 문학과 예술을 매개로 이 나라와 만난 경험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석영중 고려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등 7명. 이어 2부 '멀고도 가까운 상상의 공간'은 러시아를 현지에서 직접 취재하고 답사한 글들로, 김진영 연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와 유철종 연합뉴스 모스크바 특파원 등 7명이 집필했다.
제3부 '상처, 기다림, 희망의 비즈니스'는 러시아를 무대로 경제적 사업을 추진해온 이들, 그리고 더 넓은 의미에서 한국과 러시아 간의 사회경제 협력을 구상하고 연구한 이들의 글로, 이상준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 등 6명이 기고했다. 마지막 4부에서는 김수환 한국외국어대 노어과 교수 등 7명의 학자와 과학ㆍ기술인이 러시아와 교류ㆍ협력을 추진할 때 필요한 조건과 자세에 관해 설명해준다.
이 글들은 러시아 체험을 통해 성장해온 필자들이 자신의 삶과 한국 사회에 대한 자전적 회고와 성찰의 기록을 겸하고 있다. 나아가 한국 사회가 러시아에서 배우고 얻을 게 무엇인지, 양국 관계의 빈 곳은 어디이며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에 관해 긴요한 정책적 제안과 채근을 담고 있기도 하다.
김현택 한국외국어대 노어과 교수는 책의 머리말에서 '2020년 오늘의 러시아를 이해하려면 과거의 고정관념과 편협한 시선을 털어내고 역동적으로 변하는 이 나라의 여러 모습을 현장에서 관찰하며 다시 생각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이번 작업은 러시아를 한국적 시각에서 재조명하는 한편, 우리가 그동안 느끼고 상상해온, 또 현지 곳곳에서 직접 체험한 러시아를 그려보려는 공동의 노력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도서출판 삼인 펴냄. 3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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