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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은 충돌하고 때로는 타협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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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은 충돌하고 때로는 타협하기도 한다


전쟁은 어떻게 기억되는가: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 경험과 유산 | 송준서 지음 | 한울엠플러스 | 448




 전쟁이라는 틀을 통해 러시아라는 한 국가의 다면적인 모습을 이해하고자 한 책이다. ‘전쟁은 어떻게 기억되는가라는 이 책의 질문은 크게는 한 국가를 이해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며, 작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전쟁기억과 경험이 교차하는 이야기이다.

 

러시아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을 어떻게 기억하고 추모하고 있는가? 실제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러시아인들과의 인터뷰가 곳곳에 실린 이 책은 한 사람으로서 느낀 전쟁에 대한 기억과 경험들을 들려줌으로써, 러시아의 제2차 세계대전의 경험과 유산이 결코 단일하거나 동일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전후 소련 사회의 약자, 즉 청소년과 소수민족의 전쟁 경험에도 주목한다.

 

러시아 정부는 전쟁의 기억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가? 정부와 민중들 간, 그리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전쟁 유산에 대한 인식의 괴리와 마찰 그리고 타협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전쟁 경험과 유산, 기억의 다층적·다면적인 모습을 입체적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이 책은 전쟁사람에 관한 이야기이다. 전쟁을 겪은 저마다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전쟁 경험과 기억은 다를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기억을 가진 이들은 충돌하며 마찰을 빚기도 하지만, 이해관계가 맞을 때에는 타협하기도 한다.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이러한 전쟁기억의 다면성이다. 이러한 측면을 잘 보여줄 수 있도록 이 책은 소련 및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중앙정부의 입장뿐 아니라 소련 사회의 약자, 즉 청소년, 소수민족, 소련 붕괴 이후 신생독립국이 된 국가의 입장에도 주목하여 균형 잡힌 분석을 시도했다.

 

전쟁기억의 충돌은 소련 해체 이후 소연방 구성 공화국들에서 잘 나타난다. 에스토니아, 조지아, 우크라이나 등 신생독립국들은 소련 붕괴 이후 국민국가를 새롭게 건설하고 자신들의 국민·국가 정체성을 수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역시 동일한 상황에 놓여 있던 러시아와 독일-소련전쟁 승리의 기억을 놓고 충돌했다. 이 전쟁의 기억을 러시아는 신성시하여 국가 정체성의 근간으로 여기는 반면, 에스토니아에게 제2차 세계대전은 강제적 소비에트화와 독립 상실의 기억과 직결되는 것이었으며, 러시아와 전쟁까지 치른 조지아에게 소비에트 시기 건립된 기념비는 소비에트/러시아의 잔재로 마땅히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신생독립국들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의 승리를 상징하는 소비에트 병사 동상, 대조국전쟁 기념비를 제거하거나 파괴하는 기억전쟁을 수행하면서 러시아 타자화 정책을 강화해 나갔다.

 


 

러시아 내부에서는 충돌과 타협의 모습이 함께 나타나기도 했다. 스탈린 정부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 방식을 이용해 지방의 전쟁기억을 통제했다. 정권에 직접적으로 도전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될 때는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과도한 지방주의와 애향주의를 억압한 것이다. 하지만 지방의 요청이 중앙의 이해관계와 어느 정도 합치할 때는 지방의 편을 들어주기도 했다. 전방지역인 세바스토폴의 지방 관리들이 사회주의 사상이나 러시아혁명과 관련 있는 거리 이름을 이데올로기와는 상관없는 지방색이 강한 이름으로 변경한 것에 대해 러시아 정부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고, 중앙의 관료들은 국가적 비전이 제시된 모스크바 건축가들의 도시 계획 대신 지방의 전통을 강조한 계획안을 내놓은 세바스토폴 건축가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전후 복구가 시급한 때에 지방색을 강조한 도시 재건 계획이 지방민들의 애향심을 자극하여 재건 사업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유도할 수 있다면 이데올로기나 중앙의 비전이 덜 투영된 전쟁기억이라 할지라도 용인했던 것이다.

 

소련 붕괴 이후 신생 러시아 국가의 초대 대통령으로 옐친이 집권하면서 소비에트의 때를 벗기고 국민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새로운 도구를 찾으려 할 때 대조국전쟁의 기억은 다시 떠올랐다. 옐친 정부의 기억정치의 특징은 국론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 반대파들의 견해를 일정 정도 수용하고 타협했다는 것이다. 당시 옐친과 계속 마찰을 빚고 있었던 최고회의의 결정이었지만 옐친이 그 안을 수용하여 대조국전쟁 승전 기념 50주년 군사 퍼레이드를 허락한 것에서 이 점이 잘 드러난다. 또한 옐친 정부는 국민들의 전쟁기억을 강화하는 다양한 법안을 제정했다. 그중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19953월 옐친 정부가 공포한 군대명예의 날에 관한 법안 이다. 이는 소련 해체 이후 새롭게 탄생한 포스트소비에트 정부가 처음으로 전쟁기억을 활용한 포괄적 방안을 공포한 법안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푸틴 시기에도 전쟁기억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관행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 성격과 지향점은 옐친 시기와 달랐다. 200659일 푸틴 대통령은 군사명예의 도시칭호 수여라는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는 법령을 공포했다. 군사명예의 도시 프로젝트의 정치적 목적 중 하나는 바로 중앙-지방의 연결을 통한 러시아 공간의 통합이다. 옐친 시기 중앙정부는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많이 상실한 상태였다. 그러나 푸틴이 대통령직을 맡으면서 2000년대 초반 지방의 분권화 경향을 대통령전권대사 파견 등 특단의 조치로 어느 정도 잠재웠다. 그 후에 필요한 조치는 그동안 제각각의 지방색을 강조해 온 지방에 하나의 통일된 가치를 이식하여 중앙과 지방을 연결하고 중앙을 중심으로 한 통일성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군사명예의 도시프로젝트를 면밀히 살펴보면 이 제도를 통해 중앙과 지방을 긴밀히 연결하고자 하려는 푸틴 정부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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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대학지성 In&Out(http://www.unipres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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